강화도의 대표적인 사찰, 전등사는 오랜 역사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웅전 나부상에 얽힌 전설은 전등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전등사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사찰로서, 여러 차례 재건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연이 얽혔다.
나부상의 전설
전설에 따르면, 전등사 대웅전을 건축하던 도편수는 사찰 공사 중 사하촌의 주막을 자주 드나들며 그곳의 주모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미래를 함께 계획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공사 막바지에 이르러 주모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주모에게 돈을 건네주며 신뢰를 쌓아갔던 도편수는 그녀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찬 도편수는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 나부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이 나부상은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으로,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도편수는 사랑과 믿음을 배신한 여인의 상징으로, 그녀가 평생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미를 담아 나부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나부상의 상징적 의미
나부상은 단순히 배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을 넘어서, 속세의 욕망과 집착을 극복하고 참회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통해 부처님의 자비와 용서를 상징하며, 전등사를 찾는 후대의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보며 교훈을 얻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부상의 독특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그 안에 숨겨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배신과 복수를 넘어 참회의 길을 상징하는 이 나부상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는 재미있는 전설이다.
전등사의 역사적 배경
전등사는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사찰로,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에 창건된 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로 중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문화재와 기록을 보관하던 사찰이기도 했다. 특히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에는 프랑스군과 조선군이 이곳에서 교전하였으며, 당시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대웅전에 남아 있는 묵서(墨書)는 병사들이 전투 전에 불단과 기둥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 전쟁의 승리와 생환을 기원한 기록이다. 이러한 역사는 전등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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