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경치를 즐기는 산행을 넘어, 산이 품고 있는 수억 년의 이야기를 직접 느끼는 여행, 바로 '지오투어리즘(Geotourism)'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자, 영험한 기운이 깃든 명산, 계룡산으로 지질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계룡산의 독특한 산세와 바위 하나하나에 담긴 거대한 시간의 흔적을 함께 따라가 보시죠.
계룡(鷄龍), 이름에 담긴 지형의 단서
계룡산이라는 이름은 그 모습에서 유래했습니다. 주봉인 천황봉에서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벼슬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조선 초 무학대사는 이곳의 형국이 '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금계포란형)'이자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비룡승천형)'이라 칭했고, 여기서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로부터 산의 모양새가 매우 역동적이고 범상치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억 8천만 년 전, 계룡산의 탄생 비화
계룡산의 현재 지형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중생대 쥐라기 시대로 가야 합니다. 약 1억 8천만 년 전에서 1억 2천만 년 전 사이, 한반도 지질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대보조산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거대한 지각 변동으로 인해 계룡산의 기반이 되는 화강암이 넓게 만들어졌습니다. 계룡산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화강암이 오랜 시간 경쟁하며 빚어낸 작품입니다.
대보조산운동
지하의 거대한 땅덩어리(판)들이 서로 강력하게 부딪히면서 땅이 찌그러지고 위로 솟구쳐 오른 사건이다. 이 거대한 충돌의 힘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는 마그마가 만들어졌고, 이 마그마가 식어서 단단한 화강암이 되었다. 이 운동으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한반도 지형의 기본 뼈대가 형성되었다. 계룡산처럼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이유가 바로 이 대보조산운동 때문이다.
두 개의 화강암이 만든 절경: 계룡산 지오투어리즘의 핵심
계룡산의 산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독 뾰족하고 가파른 암석 봉우리들과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역이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두 주인공, 홍색장석화강암과 편마상화강암의 차이 때문입니다.
1) 기개 넘치는 봉우리를 만든 '홍색장석화강암'
천황봉, 황적봉 등 계룡산의 주요 산봉우리를 이루는 암석은 대부분 '홍색장석화강암'입니다. 이름처럼 장석이 홍색을 띠어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암석은 주변의 '편마상화강암'보다 풍화와 침식에 훨씬 강합니다. 더 단단한 암석이 오랜 세월을 버티며 지금과 같은 험준하고 높은 산등성이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 지오투어리즘 포인트: 동학사에서 관음봉으로 오르는 계곡은 경사가 매우 급하고, 계곡 상부에는 식생이 거의 없는 암괴류(돌무더기)가 발달해 있습니다. 이는 단단한 홍색장석화강암 지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질 경관입니다.
2) 완만한 산세를 이룬 '편마상화강암'
계룡산의 동남부와 서남부에 분포하는 '편마상화강암'은 계룡산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입니다. 이 암석은 홍색장석화강암에 비해 풍화에 약해 오랜 시간 깎여나가며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지표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 흙이 잘 만들어지고 식물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되었습니다.
- 지오투어리즘 포인트: 연천봉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편마상화강암 지대는 홍색장석화강암 지역보다 식생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산세를 보여줍니다. 두 화강암 지대의 차이를 직접 비교하며 걷는 것이 계룡산 지오투어리즘의 묘미입니다.
계룡산, 다시 보고 새롭게 걷기
계룡산은 수많은 무속인과 기도객이 찾는 영적인 산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강한 영적인 기운은, 어쩌면 1억 8천만 년의 시간을 견디며 만들어진 이 거대한 땅의 에너지일지도 모릅니다. 계룡산에 가시게 되면 동학사, 갑사와 같은 문화유산과 더불어, 발밑의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붉은 빛을 띠는 단단한 바위인지, 줄무늬가 보이는 푸석한 바위인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산행은 훨씬 깊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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